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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에 지혜롭고 악함에 미련하라 — 로마서 16:17-20 묵상 (하루묵상 2026-10-24)

[로마서 16:17-20] 선함에 지혜롭고 악함에 미련하라

착하고 순진한 사람일수록 관계에서 반복해서 큰 상처를 입곤 합니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돌아서서 편을 가르고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제때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고 다 받아주는 것을 성품의 선함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분별이 빠진 순진함은 결국 스스로를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대개 정교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들기에 달콤한 아첨과 매끄러운 핑계 뒤에는, 타인을 이용해 자기 유익을 취하려는 욕심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평화나 상대의 유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자기 이익을 채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해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이들의 실체를 선명하게 지적하며, 단호한 태도를 취할 것을 권면합니다.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를 섬기나니 교언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로마서 16:17-18)

성경은 악한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과 끝없이 다투거나 그들을 설득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실체를 유심히 살피고, 단호하게 거리를 두라고 지시합니다. 악한 영향력을 인내라는 이름으로 묵인하는 것은 경건이 아닙니다. 분열과 욕심의 씨앗을 그대로 방치하면, 그 관계는 결국 모두를 병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참된 평안은 무작정 모든 관계를 참고 견딜 때 찾아오지 않습니다. 도리어 분열의 씨앗을 가려내고 거룩한 경계를 세울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악한 일에는 미련해질 만큼 거리를 두고, 선한 일에는 지혜로워져 참된 가치를 지켜내야 합니다.

지혜가 없는 순진함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또다시 동일한 상처와 미혹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별력은 상대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삶의 영역을 건강하게 보호하기 위한 지혜입니다.

오늘 당신의 관계 속에서 선함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하고 있는 악한 영향력은 무엇이며, 단호하게 세워야 할 건강한 경계는 무엇입니까?

🗂 이 글의 정보
  • date · 2026-10-24
  • track · 하루묵상
  • scripture · 로마서 16:17-20
  • type · 묵상
  • tags · 하루묵상, 로마서, 롬, 로마서 16장, 로마서 16:17-20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왈트키’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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