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권을 내려놓는 언약의 결단 (창세기 17:9-27)
내 힘으로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은 언제 깨어지는가? 우리는 일상의 고난이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한계 상황을 만날 때 비로소 그 단단했던 자만을 돌아보게 된다. 아흔아홉 살의 아브라함이 직면했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나님은 약속의 성취를 신뢰함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수단으로 이스마엘을 낳았던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그의 육체적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된 바로 그 시점에 뜻밖의 명령을 내리셨다.
>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 17:10)
아흔아홉 살의 족장에게 요구된 할례는 우월함을 자랑하는 거룩한 훈장이 아니었다. 생식이 일어나는 신체 부위의 양피를 베어내는 행위는, 내 힘과 자원으로는 단 하나의 생명도, 단 하나의 약속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절망적인 자기 무능력의 고백이자 솔직한 항복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몸에 영구한 상처의 흔적을 새기심으로써, 앞으로 이어질 모든 약속의 성취가 그의 혈통이나 통제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로만 이루어질 것임을 선언하셨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입술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신앙 고백처럼 나열하지만, 손에는 여전히 내 경험과 예산, 치밀한 계산표를 꼭 쥐고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내 미래와 안전을 스스로 통제해야만 안도하는 조바심은, 결국 하나님께서 일하실 거룩한 자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내 주도권과 익숙한 고집을 잘라내지 않는 한,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개입할 여지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참된 믿음은 내 삶에 무언가를 더 채워 넣는 열심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에서 가장 질기게 붙잡고 있던 통제권과 주도권을 하나님 앞에 기꺼이 내어놓는 거룩한 결단이다. 내 힘으로 인생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역사하기 시작한다.
오늘 당신이 여전히 내 힘으로 끌어안은 채 놓지 못하고 있는 삶의 통제권은 무엇인가?
🗂 이 글의 정보
- date · 2026-10-21
- track · 하루묵상
- scripture · 창세기 17:9-27
- type · 묵상
- tags · 하루묵상, 창세기, 창, 창세기 17장, 창세기 17:9-27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왈트키’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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