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처럼 (로마서 15:7-13)
살다 보면 나와 결이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을 마주하곤 합니다. 대화의 방식이나 가치관, 일을 처리하는 기준이 달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은근한 거부감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 마음에 들고 편안한 사람만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일상과 공동체 속에서는 성향도 배경도 전혀 다른 이들과 섞여 살아가야 합니다.
1세기 로마 교회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은 깊은 갈등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도무지 함께 섞이기 어려워 보이던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한 울타리에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율법과 문화적 배경의 격차는 서로를 향한 판단과 거절의 벽을 높게 쌓아 올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높아진 벽을 허물기 위해 복음의 근본적인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낮아지셔서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자격 없던 우리 모두를 조건 없이 품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겸손한 섬김 앞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로막던 단단한 고집과 편견은 무너졌습니다. 바울은 이 은혜의 원리를 따라 권면을 던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로마서 15:7)
우리가 누군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상대방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기준과 고집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내 마음에 들어야만 품겠다는 자격시험을 멈추지 않는 한, 타인을 향한 거부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은 자격 없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다름을 계산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수용하셨습니다. 날마다 나를 조건 없이 안아주신 그 은혜의 깊이를 기억할 때, 비로소 내 좁은 기준을 내려놓을 용기가 생깁니다.
내 고집이라는 좁은 틀을 내려놓을 때 우리 삶에는 참된 평안과 소망이 찾아옵니다. 나랑 절대 안 맞는 사람을 품는 가장 빠른 길은 그 사람을 바꾸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주님의 포용을 닮아 내 기준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오늘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누군가를 마주한다면, 나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주셨던 주님의 마음으로 먼저 담담히 품어보면 어떨까요.
오늘 내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그 사람을 향해, 내 고집을 내려놓고 먼저 다가설 작은 한 걸음은 무엇입니까?
🗂 이 글의 정보
- date · 2026-10-20
- track · 하루묵상
- scripture · 로마서 15:7-13
- type · 묵상
- tags · 하루묵상, 로마서, 롬, 로마서 15장, 로마서 15:7-13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왈트키’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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