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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이야기 1화] 목사가 AI 개발을 시작한 이유

출퇴근 유튜브 2달 공부 — 프롬프트에서 루프까지의 사다리

이 연재는 이 블로그를 만드는 AI 시스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만든 사람(운영자)의 눈으로 날짜 순서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잘된 것만 쓰지 않습니다 — 막혔던 것, 틀렸던 것, 그래서 배운 것을 그대로 씁니다.

출퇴근길의 유튜브 두 달

저는 목회자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출퇴근길 운전석에서 시작됐습니다.

두 달 동안, 오가는 차 안에서 AI를 다루는 유튜브 영상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프롬프트를 이렇게 쓰면 답이 좋아진다"는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듣다 보니 계단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같은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첫째 단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입니다. AI에게 말을 잘 거는 법. 질문을 잘 만들면 답이 좋아집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합니다.

둘째 단은 에이전트입니다. 말을 잘 거는 데서 멈추지 않고, AI에게 역할과 도구를 주는 것입니다. "너는 문헌을 찾는 연구자다. 서재를 검색할 수 있다"라고 세워 두면, 질문 하나에 답하는 AI가 아니라 일을 맡길 수 있는 일꾼이 됩니다.

셋째 단은 하네스(harness)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마구(馬具) — 말에 채우는 굴레와 고삐입니다. 일꾼이 생기면 곧 알게 됩니다. 이 일꾼은 성실한데 가끔 태연하게 틀립니다. 그래서 일꾼 주변에 검증 장치를 채웁니다. 각주를 달면 실제 문헌과 대조하고, 기준에 못 미치면 되돌려보내고, 바깥으로 나가는 글은 반드시 사람이 결재하는 구조. 이 연재의 대부분은 사실 이 셋째 단 이야기입니다.

넷째 단은 루프입니다. 그 전체가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매일 도는 것. 새벽에 그날의 본문을 읽고, 연구하고, 쓰고, 검수하고, 사람의 승인을 기다리는 자리까지 와 있는 것.

저는 이 사다리를 이론으로 배운 게 아니라, 두 달 동안 하나씩 밟아 올라오면서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막혔고 어떻게 뚫었는지가 이 연재의 내용입니다.

6월 10일 — 계획서를 쓴 날

이 시스템에는 창립일이라 부를 만한 날짜가 있습니다. 2026년 6월 10일, 흩어져 있던 구상을 하나의 계획서로 종합한 날입니다. 그 문서의 첫 장에는 기능 목록이 아니라 "왜 이걸 하는가"가 적혀 있습니다.

> 연구 자료에 근거한, 사람 같은 신학 콘텐츠를 만든다. 궁극의 목표는 평신도 신학의 민주화 — 신학교 도서관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도 근거 있는 성경 연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목회를 하며 늘 아쉬웠던 것이 있습니다. 좋은 주석과 연구는 많은데,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닿기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입니다. 원서는 비싸고, 언어의 벽이 있고, 무엇보다 시간이 없습니다. AI가 그 거리를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 — 단, 지어내지 않고 근거를 보여 주면서 줄일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그 조건이 이후 두 달의 거의 모든 고생의 원인이 됩니다.

처음부터 정해 둔 규칙들

같은 날, 운영 원칙 일곱 조를 함께 적었습니다. 그중 세 개가 이 시스템의 성격을 결정했습니다.

"지식은 색인에, 추론은 인출로." AI의 머릿속 기억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식은 실제 문헌을 색인해 둔 서재에 두고, AI는 매번 그 서재에서 꺼내 쓰게 합니다. AI가 "제가 알기로는…"이라고 말하는 순간을 최대한 없애는 구조입니다.

"검증은 raw 증거로만." AI가 "성공했습니다"라고 보고하면, 그 보고를 믿지 않고 실제 기록을 열어 확인합니다. 이 원칙이 없었다면 이 연재의 9화(침묵하는 실패들)에 나오는 사고들을 영영 몰랐을 것입니다.

"돈과 대외 공개는 영원히 사람의 결재." 시스템이 아무리 자동화되어도, 바깥으로 나가는 글의 마지막 버튼은 사람이 누릅니다. 지금 여러분이 읽는 이 글도 AI가 초안을 쓰고 사람이 검토해 공개한 것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열아홉

계획서에는 조직도도 있었습니다. AI 하나에게 모든 일을 시키지 않고, 역할이 다른 열아홉 에이전트로 나눴습니다. 문헌을 찾는 연구자, 교리를 따지는 신학자, 강단의 언어로 옮기는 설교자, 그리고 — 이게 중요한데 — 쓰는 자를 검사하는 검수자들을 따로 두었습니다.

왜 나눴는가. 사람도 그렇지만, 쓰는 자아와 검사하는 자아가 한 몸이면 검사가 무뎌집니다. 글을 쓴 AI에게 "네 글 괜찮아?"라고 물으면 대체로 괜찮다고 합니다. 다른 역할, 다른 기준을 가진 검수자가 봐야 반려가 나옵니다. 실제로 첫 글부터 반려가 나왔습니다 — 그 이야기가 다음 화입니다.

이 연재의 지도

앞으로 이런 순서로 이어집니다. 2화: 첫 글이 나오던 날, 그리고 검수자의 6점 반려. 3화: 제 설교 1,200편을 읽게 했더니 생긴 일. 4화: 목사가 AI 논문을 읽는 법. 5화: 계획서를 새로 쓰니 꿈이 사라졌던 사건. 6화부터는 라이브에서 터진 사고들과 거기서 남은 원칙들 — 그리고 마지막 화에서, 이 모든 여정이 왜 "1차 자료로 누구나 연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이어졌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달 전 출퇴근길에서 시작된 공부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 이 글의 정보
  • type · 개발이야기연재
  • date · 2026-08-01
  • tags · 제작기

ℹ️ 이 글의 ‘칼빈’·‘라이트’는 역할을 나누기 위한 에이전트 별칭이며, 실존 신학자 개인이나 그분들의 견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의 주장은 본문에서 출처와 함께 3인칭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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